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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가 된다는 건 단지 동물을 치료하는 기술을 갖춘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매일같이 생명 앞에 서고, 보호자의 눈빛과 감정과 마주하며, 때로는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디는 일입니다. 이 글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작지만 깊은 성장의 순간들, 수의사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변화된 내 모습, 그리고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이 가르쳐준 삶의 철학을 진솔하게 담았습니다.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이었던 병원이, 결국 나 자신을 성장시킨 가장 큰 학교였다는 걸 고백하며, 그 따뜻한 배움의 시간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병원 운영이 나를 가장 많이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처음 병원을 열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료대 위에 작은 진료 가방 하나 올려두고, 벽에 아직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새 페인트 자국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었죠. “잘 해보자, 나답게 해보자.”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수의학 책에서는 배운 적 없는 것들로 매일이 가득했어요. 단순히 치료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었거든요. 병원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건,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었어요. 오늘 어떤 아이를 먼저 볼 것인지, 어떤 장비를 새로 들일 것인지, 어떤 직원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 몫이었고, 그만큼 부담도 컸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책임감이 저를 점점 단단하게 만들더라고요. 물론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처음 맡았던 진료에서 보호자의 불만을 들었던 날은 밤새 잠을 못 이루기도 했고, 직원이 갑작스레 퇴사하겠다고 했던 날엔 눈앞이 깜깜했어요.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지나면서 알게 됐어요. 내가 운영하는 병원이 단지 ‘일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믿고 기대는 공간이라는 걸요. 그래서 점점 더 책임감을 갖게 됐고, 더 깊은 눈으로 아이를 보고, 보호자의 마음을 느끼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병원 운영은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복잡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저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시간이기도 했어요. 감정적으로도, 사람으로서도 한층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수의사로서보다 사람으로서 변한 것들
사실 처음엔 ‘좋은 수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진단을 정확히 하고, 적절한 치료를 빠르게 제시하며, 보호자와 신뢰를 잘 쌓는 그런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병원을 운영하면서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수의학적 지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반려동물의 상태는 숫자나 수치로만 보이지 않고, 보호자의 감정, 경제적 여건, 가족 간의 고민까지도 함께 들어 있어요. 그래서 한 아이의 치료를 두고 보호자와 마주 앉을 때면, 저도 모르게 ‘수의사’의 모습보다는 ‘조언을 주는 친구’나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의 자세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어느새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설명도 조금 더 길어졌어요. 예전에는 필요한 검사가 있다면 ‘이건 꼭 하셔야 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면, 지금은 ‘이 아이의 몸 상태를 조금 더 정확히 알고 싶어요. 보호자님의 결정에 따라 조심스럽게 진행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저를 보게 돼요. 병원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변한 건 아마 그런 태도 같아요.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사람을 보는 시선이 생겼다는 거요. 그리고 그건 보호자들이 제게 먼저 보여주셨던 태도에서 배운 거예요. 아이를 위한 결정을 앞두고 밤새 고민하던 보호자의 흔들리는 눈동자, 입원실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돌아서던 뒷모습, 그 모든 순간들이 제게 가르쳐줬어요. 치료는 기술이지만, 마음을 다루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걸요. 병원을 운영하면서 저는 수의사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더라고요.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가르쳐준 삶의 철학
아이들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마다, 저는 또 하나의 삶을 마주하게 돼요.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전부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보다 가까운 존재인 아이들. 그들이 아프고, 낫고, 혹은 이별을 맞이하는 그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저도 자연스럽게 인생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아주 나이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진료실에 왔던 적이 있어요. 이가 거의 없고, 걸음도 느릿했지만 보호자분은 단 한 번도 ‘노쇠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우리 애기, 요즘엔 잠을 많이 자요.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해요.” 하며 웃으며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 아이가 마지막을 맞이하던 날, 보호자분은 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선생님, 저 아이는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친구였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으로요.” 그 말을 듣고 돌아서서 한참을 울었어요. 병원을 운영하며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보호자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 안에 깊이 새겨졌어요. 보호자와 반려동물은 서로를 닮아가요.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을 읽고,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사이. 그런 관계를 매일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돼요.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나’, ‘이 하루를 충분히 의미 있게 보냈나’ 하고요.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은 제가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삶의 스승이에요. 병원 운영이라는 건 단순히 경영이 아니라, 매일 삶을 배우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저는 늘 생각해요. 내가 이 일을 택해서 참 다행이라고요.
마무리
병원을 운영하면서 저는 수의사가 되는 꿈 이상으로 더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됐어요. 때로는 무거웠고, 때로는 버거웠지만, 그 모든 과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반려동물을 치료하면서도, 사실은 그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저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는 걸 고백하고 싶어요. 병원은 누군가의 아픔을 고치는 곳이지만, 저에게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오늘도 진료대 앞에 서며 다시 다짐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